오늘의 나를 있게 한 수련회 추억
#1.
수련회는 목회자로서 오늘의 나를 있게 한 원동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가 처음 수련회에 참석한 것은 초등학교 졸업을 앞둔 1980년 1월이었다. 장소는 우리 마을에서 6km 남짓 떨어진 고신 측 임당교회였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시골교회는 학생 수가 적어 자체 수련회를 열기 어려웠다. 그래서 이웃 교회들이 연합하여 수련회를 가졌고 주로 여름이었다. 그런데 그해에는 웬일인지 겨울수련회가 열렸고 고향 교회도 참석하게 되었다. 수련회 장소는 열악했다. 임당교회는 우리 교회보다 훨씬 작고 허름했다. 나무를 태우는 화목난로를 피워 예배당은 늘 매캐했다. 숙소는 교회 옆에 있는 재실(齋室)이었는데, 이 글을 쓰며 위성사진으로 찾아보니 '임호서원'이었다. 서원들이 대부분 그렇듯 산자락에 위치해 있었다. 평소 사람이 살며 불을 지피는 곳이 아니라 아무리 불을 때도 방바닥은 뜨겁지 않았고, 문틈으로 불어오는 겨울바람에 밤새 오돌오돌 떨었다. 재실 뒤 우거진 숲에서 부엉이 소리와 산짐승 소리가 들려 무섭기도 했다. 그때 난생처음 서양인을 보았다. 요즘 선교지에 가면 현지인들이 우리를 신기하게 보듯, 그때 우리도 그 서양 선교사님을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더 신기했던 것은 그 선교사님이 한국말을 유창하게 하는 거였다. 그렇게 첫 수련회는 낡은 재실과 서양 선교사님, 그리고 겨울 추위와 함께 강렬하게 기억에 새겨졌다.
#2.
고등학교 1학년 여름 수련회는 청도 운문면에 있던 대천교회에서 열렸다. 교회 앞에는 비단결 같은 운문천이 흘렀고 바로 옆에는 ‘문명고등학교’가 있었다. 역시 시골 아이들이 많이 모였다. 우리 교회가 특송을 할 때 내가 기타를 치며 ‘사랑은 언제나 오래 참고’를 불렀던 기억이 생생하다. 오후에는 성극대회가 열렸다. 조별로 성극을 준비하며 선후배도 알게 되었고 은혜도 많이 받았다. 안타깝게도 지금은 대천교회도, 문명고등학교도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운문댐이 개발되면서 그곳이 수몰되었기 때문이다. 대신 경산으로 이전해 지금은 도심 속의 대천교회와 문명고등학교로 존재하고 있다. 가끔 고향에 가면 그때 은혜받았던 대천교회와 뛰놀던 문명고 운동장이 아련히 떠오른다.
#3.
신학교 3학년 때다. 군에서 제대한 후 교육전도사로 대구의 한 교회를 섬길 때였다. 그해 고향 학생회 수련회는 매전면 동산기도원 앞에 있는 동산교회에서 연합으로 열렸다. 동산교회는 큰아버지께서 섬기시던 교회였다. 시찰 목사님들은 신학생인 내게 저녁 기도회와 오후 천로역정을 맡겨주셨다. 저녁 집회 후 기도회를 인도할 때, 짧은 연극을 통해 기도 제목을 던지고 기도로 결단시켰다. 그때 기도회는 성령의 강력한 임재를 경험하는 뜨거운 시간이었다. 오후에는 맑은 물이 흐르는 냇가로 데리고 가서 코스별로 천로역정을 진행했다. 내가 총진행을 맡고 출신 동문들이 조장을 맡았는데, 코스마다 큰 은혜가 쏟아졌다. 수련회는 내 삶과 사역의 바탕이 되어준, 잊을 수 없는 '은혜의 추억'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