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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온도로 지피는 목양의 군불

✍️ 김순원 목사님2026년 2월 1일

#1.

요즘 들어 옛날이 자주 그립습니다. 옛이야기를 자주 하는 걸 보니 저도 나이 먹었나 봅니다. 삼한사온이란 말이 무색하게 올겨울은 유난히 더 길고 춥게 느껴집니다. 이제는 새벽에 교회 갈 때마다 내복을 챙겨 입는 것은 이제 일상이 되었습니다. 지난 목요일 저녁, 가까운 목사님들과 함께 팔당 ‘개성집’을 찾았습니다. 북한식 개성만두 전문점입니다. 우린 만두전골을 주문했습니다. 이내 주먹만 한 고기만두와 김치만두, 그리고 당근, 김치, 파, 팽이버섯 등 야채가 듬뿍 들어간 전골냄비가 상에 올랐습니다. 가스 불을 켜니 이내 보글보글 끓어오릅니다. 만두는 이미 익혀 나왔기에 금방 맛볼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국물 맛이 일품이었습니다.

#2.

목사님들은 다들 맛있게 드셨습니다. 만두를 더 추가해서 먹고도 마지막 남은 국물에 공기밥을 넣어 죽처럼 저었습니다. 야채와 김치, 옆구리 터진 만두 속까지 한데 어우러지니 금세 먹음직스러운 죽이 되었습니다. 이미 배가 부를 대로 불렀는데도 그 죽이 또 들어갑니다. ‘위대하신’ 우리 주님을 닮은 목사님들도 역시 위(胃)대하십니다. 연령대가 비슷하다 보니 죽을 나누면서 자연스레 옛 기억에 잠겼습니다. 제가 먼저 말을 꺼내었습니다. 앞에 앉은 청송 출신 목사님에게 물었지요. “이 밥국 같지 않습니꺼?” “하모요, 우리 이 밥국 많이 억수로 묵으면서 컸지예” 그렇게 어릴 적 추억을 하나둘 끄집어냅니다. 경상도에서는 ‘밥국’이라 불렀던 그 음식을 어떤 지방에서는 ‘갱죽’이라고도 부릅니다.

#3.

밥국을 먹고 있자니 자꾸 아부지, 어무이 생각이 났습니다. 아부지는 유난히 밥국을 좋아하셨습니다. 추운 겨울, 아부지는 늘 나무를 했습니다. 나무는 농한기인 겨울마다 동네 아부지들이 해야 할 아주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온종일 산에서 나무를 하고 돌아오시면 어무이는 밥국을 끓여 저녁으로 내놓으셨습니다. 멸치 육수에 김치, 콩나물, 파 그리고 식은 밥을 넣고 팔팔 끓여낸 소박한 죽입니다. 나무하시느라 언 몸을 녹이는 데는 밥국만 한 게 없었습니다. 워낙 뜨거워 입술을 후후 불어가며 먹어야 했지만, 속까지 뜨끈해지는 그 맛으로 우리는 그때의 매서운 겨울을 이겨냈습니다.

#4.

세상은 많이 변해도 입맛은 쉽게 변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름난 식당에서 최고로 인기 있는 만두전골을 먹으면서도, 끝내 제 입맛이 찾아가는 곳은 남은 국물에 밥을 말아 먹었던 그 투박한 ‘밥국’의 맛이니 말입니다. 아부지가 나무를 해 오시던 그 시절의 겨울은 유난히 추웠습니다. 하지만 정성껏 끓여 주신 어무이의 밥국이 있어 그 추위도 너끈히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춥습니다. 하지만 밥국으로 추위를 이겨냈던 ‘기억의 온도’ 덕분에 올겨울은 조금 덜 춥게 느껴집니다. 내일 새벽, 다시 내복을 입고 교회로 향할 것입니다. 제 마음속엔 이미 뜨끈한 밥국이 지펴준 커다란 난로 하나가 놓여 있습니다. 그 온기로 올겨울 목양의 군불을 열심히 지펴보겠습니다.

기억의 온도로 지피는 목양의 군불 - 예인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