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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방을 품은 청년 선교사

✍️ 김순원 목사님2026년 8월 23일

#1.

대구에서 목사 안수를 받고 그해 겨울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부목사로 부임한 곳은 관악구 봉천동의 한 중형 교회였습니다. 성도들은 '서울 사람' 하면 떠오르던 선입견과 달리 참 소박하고 정이 넘쳐 마치 시골 사람들 같았습니다. 교회는 언덕 위 옹기종기 모여 있는 집들 사이에 우뚝 솟아 있었습니다. 아래 길에서는 교육관 1층으로 연결되고, 윗길에서는 본당으로 바로 들어갈 수 있는 구조였는데, 두 길의 높이 차이가 무려 7층 건물 높이에 달했습니다. 그만큼 가파른 비탈에 세워진 교회였지만, 성도들은 예배당을 건축할 때 벽돌 한 장 한 장 손수 나르며 눈물로 기도했던 일들을 가장 큰 자랑이자 자부심으로 여겼습니다. 당시 30대 초반이던 내 또래 성도들도 많았고, 한창 출산할 때라 가정마다 아이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우리 집 역시 큰딸이 4살, 둘째 딸이 겨우 8개월이었습니다.

#2.

2000년의 어느 날, 한 가정에 어여쁜 여자아이가 태어났습니다. 아이의 부모는 교회에서 만난 청년 커플이었고, 조부모님들 역시 교회의 성도들이었습니다. 늘 단정한 정장 차림으로 직장에 다니시던 세련된 친할머니와, 넉넉하고 따뜻한 인심으로 교회를 섬기시던 외할머니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아이의 이모 또한 교회 학교 교사와 성가대원으로 누구보다 뜨거운 열정을 품고 헌신하던 멋진 청년이었습니다. 주중에는 심방으로 성도들의 삶을 돌보고, 주말에는 청년부를 품으며 그곳에서 5년 동안 전심으로 사역했습니다. 부목사로서 처음 마주했던 그 5년의 시간 속에는 치열했던 순간도, 행복했던 추억도 가득했습니다. 지금도 그 길을 지날 때면 아련한 기억들이 떠오릅니다. 함께 땀 흘렸던 담임목사님은 은퇴하셨고, 지금은 왕성교회 부목사를 거쳐 부임한 후배 목사님이 교회를 섬기고 있습니다.

#3.

이후 2010년, 왕성교회 부목사로 6년 사역 후 예인교회 부임하게 되었습니다. 감사하게도 얼마 지나지 않아 예전 제자들이 하나둘 등록하기 시작했고, 2000년에 태어났던 그 작은 아이도 어느덧 초등학생이 되어 이모의 손을 잡고 출석했습니다. 집이 쌍문동이라 거리가 꽤 멀었지만, 아이는 토요일마다 교회 근처 이모 집에서 하룻밤을 자고 주일예배의 자리를 지켰습니다. 그렇게 청소년기를 지나 대학생이 되기까지 교회 안에서 믿음의 뿌리를 내려갔습니다. 우리 교회 역시 4년 내내 장학금을 전하며 아이가 온전한 신앙인으로 자라나도록 사랑으로 함께했습니다. 졸업 후에는 전공을 살려 이모처럼 사회복지사의 길을 걷기 시작했고, 주일이면 교회의 자랑인 성가대 찬양 모습을 정성껏 휴대폰에 담는 봉사도 묵묵히 이어갔습니다.

#4.

어느 날, 훌쩍 자란 그 청년이 찾아와 1년간 단기선교로 필리핀 갈 생각인데, 추천서를 써 달라고 했습니다. 왜 선교사로 헌신했는지, 이것저것 물으면서 기쁨으로 써 주었습니다. 갓난아이 때부터 지켜보았던 한 영혼이 주 안에서 이토록 아름답게 자라나, 이제는 또 다른 영혼들을 위해 눈물 흘릴 줄 아는 사역자가 되었다는 사실에 가슴 깊은 감사가 밀려왔습니다. 지난 금요일에 출국길에 오른 그 청년이 박찬경입니다. 찬경 선교사는 자신이 이렇게 믿음으로 설 수 있었던 것도 목사님의 설교를 통해 많은 은혜를 받았기 때문이라 했습니다. 그 말이 고맙고 벅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