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깊은 터널을 지나는 동기에게
#1.
지난 목요일 점심 무렵, 남양주 호평동에서 목회하시는 동기 한00 목사님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최근 몇 년간 왕래가 뜸했던 터라 무척 반가웠습니다. 차분한 목소리의 목사님은 제 안부를 물으시더니, 근처 한양대병원 장례식장에 볼일이 있다며 교회 마당에 차를 잠깐 주차해도 되겠냐고 양해를 구하셨습니다. 주차 공간이 협소했지만 흔쾌히 괜찮다고 말씀드리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로부터 한 시간쯤 지났을까요? 동기 단체 대화방에 부고가 떴습니다. 누군가의 부모님이 돌아가셨나 싶어 확인해 보니 고인은 서른일곱 살의 젊은 청년이었고, 상주인 아버지의 이름에는 조금 전 저와 통화했던 한00 목사님이 적혀 있었습니다.
#2.
깜짝 놀라 그와 친한 동기 목사님에게 전화하니, 한 목사님의 둘째 아들이 며칠 전 지하철 공사 현장에서 일하다가 추락사했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전해주었습니다. 뉴스를 검색해 보니 신안산선 공사 현장에서 하청 업체 근로자가 추락사했다는 기사가 나와 있었습니다. 그 근로자가 바로 한 목사님의 아들이었던 것입니다. 가슴이 턱 막히며 먹먹한 아픔이 밀려왔습니다. '어째서 이런 일이 또 일어났을까….' 다음 날 장례식장을 찾아가 만난 한 목사님은 큰 충격 속에서도 비교적 차분했습니다. 목사님은 아들의 비보를 마주한 순간 가장 먼저 제가 생각났다고 하셨습니다. 사고 당시 필리핀 선교 중이셨던 목사님은 머리를 크게 다쳤다는 이야기만 듣고 급히 귀국길에 올랐지만, 도착했을 때 아들은 이미 지상의 숨을 거두고 천국으로 떠난 후였습니다.
#3.
모든 상황이 제 과거와 너무나 닮아있었습니다. 큰딸 ‘하람’이도 미국 유학 중 버스 사고로 머리를 다쳐 그렇게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딸을 보내고 우리 가족이 걸어온 삶은 말로 다할 수 없을 만큼 힘겨웠습니다. 하지만 하나님만을 오롯이 의지하며 꿋꿋하게 그렇게 버티며 지난 11년을 살아왔습니다. 며칠 전에는 KBS의 한 기자가 저를 찾아왔었습니다. 연세대 사회복지학 박사논문으로 '장기 기증자 가족을 위한 제도적 예우'를 연구하는 중이라고 했습니다. 하람이의 장기 기증 과정과 이후의 삶에 대해 한 시간 남짓 담담히 이야기를 쏟아내는데, 예전처럼 눈물이 쏟아지거나 목이 메이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약이 되기도 했겠지만, 그동안 하나님께서 제 마음을 참 많이 만지시고 치유해 주셨음을 새삼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4.
이제 한 목사님은 자식을 먼저 떠나보내고 살아내야 했던, 저의 지난 11년과 같은 아픈 시간을 걸어가야 합니다. 수없이 울어야 하고, 살을 도려내는 듯한 아픔을 겪어야 하며, 사무치는 그리움과 싸워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한 목사님도 이 깊은 터널을 잘 이겨내시리라 저는 믿습니다. 절망 속에 있던 나를 위로하시고 다시 일으켜 세우신 우리 주님이, 이제는 한 목사님 곁에서 함께 걸어가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가끔 한 목사님을 불러내어 따뜻한 밥 한 끼라도 같이 나눌 생각입니다. 그렇게 서로의 아픔을 보듬고 천국 소망을 품고 살다 보면, 눈부신 그곳에서 우리는 다시 만나 영원히 살게 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