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의 고향, 하늘의 본향
#1.
올해도 추석이 지나갔습니다. 해마다 맞이하는 명절이지만 마음속에 닿는 느낌은 조금씩 달라집니다. 부모님 없는 추석을 맞이한 지도 어느덧 5년째입니다. 어머니가 계실 적에는 명절마다 고향을 찾았습니다. 고향에 가면 반가운 벗들과 선후배들을 만날 수 있었고, 늘 발걸음은 어린 시절 뛰놀던 시골 교회로 향했습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가득했던 교회 마당은 이제 명절에도 고요한 적막만이 흐릅니다. 특유의 나무 향이 배어 있는 예배당, 낡은 성가대 악보집, 손때 묻은 성경 찬송가, 그리고 생전 아버지가 무릎 꿇고 기도하시던 자리가 눈에 선합니다. 올해도 고향 땅을 직접 밟지는 못했지만, 조용히 눈을 감고 그리운 추억의 자리를 가만히 다녀왔습니다.
#2. 연휴 중 대구 처가를 찾았습니다. 장인, 장모님도 이제는 연세가 많아 기력이 예전 같지 않으십니다. 그래도 곁에 사는 처남과 처제 가족들이 다 모이니 집 안 가득 명절의 생기가 돌았습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제 몫을 다하며 반듯하게 살아가는 조카들의 모습이 대견했습니다. 진로를 준비하느라 이번에 함께하지 못한 두 딸의 빈자리는 못내 아쉬웠습니다. 오후에는 잠시 형님을 만났습니다. 60대 중반의 나이에도 여전히 책과 음악을 가까이하고, 세상의 불의에 맑은 의분을 품고 살아가는 형님의 모습은 늘 남다릅니다. 한 피를 나눈 형제라도 살아가는 결도, 걷는 인생길도 참 다르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3.
장인어른은 저수지가 내려다보이는 작은 텃밭을 정성스레 가꾸십니다. 매일 물을 주면서 정성껏 가꾸는 밭에는 각종 채소가 자랍니다. 아버님은 그곳에서 키운 부추, 고추, 마늘 그리고 직접 수확한 참깨로 짠 참기름까지 한 포대를 챙겨주었습니다. 장모님은 명절 음식을 바리바리 챙겨주셨습니다. 자식이 나이가 환갑이 다 되어가도 변함없이 쏟아부어 주시는 내리사랑 앞에 가슴이 뭉클해집니다. 아쉬운 작별을 뒤로하고 어제 새벽길을 나섰습니다. 캄캄했던 하늘이 달리는 사이 서서히 밝아왔습니다. 군데군데 막힘은 있었지만 비교적 수월하게 집에 도착했습니다.
#4.
차 트렁크 가득 실린 부모님의 밭작물과 음식 보따리를 풀어놓으며, 문득 ‘사랑의 빚진 자’로 살아가는 우리네 인생을 묵상합니다. 자식으로 평생 부모님의 희생과 사랑을 먹고 자랐으면서도, 그 사랑을 다 갚기도 전에 부모님은 하나둘 자식 곁을 떠나가십니다. 텅 빈 고향 교회의 기도 자리에서 부모님이 남겨주신 믿음의 유산을 기억하고, 연로하신 처가 부모님의 주름 진 손길에서 하나님의 변함없는 돌보심을 봅니다. 이 땅의 명절은 늘 아쉬운 작별과 함께 끝나지만, 우리에게는 눈물도 이별도 없는 영원한 본향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본향에서 먼저 간 가족들을 다시 만날 그날을 사모하며 믿음의 뿌리를 다시 내리게 됩니다. 명절 끝자락, 가족들이 건네준 따뜻한 온기를 품고 일상으로 돌아왔습니다. 이제 다시 나에게 맡겨진 강단과 성도들을 향해 힘찬 발걸음을 내딛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