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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지게 익어가는 삶의 향기

✍️ 김순원 목사님2026년 6월 21일

#1.

서울 청량리에 가면 옛 모습 그대로를 간직한 소박한 식당이 있습니다. ‘혜성칼국수’입니다. 1968년에 문을 연 이래로 지금까지 풍경도, 맛도 변함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지요. 제가 세상에 태어난 지 딱 1년 뒤에 세워졌으니, 혜성칼국수는 제 나이만큼이나 깊은 역사와 전통을 이어온 셈입니다. 이곳을 처음 알게 된 것은 배 집사님 덕분이었습니다. 몇 해 전, 집사님은 저희 부부와 최 목사님 부부, 탁 사모님을 그곳으로 초대해 처음으로 그 손맛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때 먹었던 멸치 손칼국수의 맛은 그야말로 일품이었습니다. 진한 멸치 육수에 직접 손으로 치대어 만든 면발은 쫄깃하면서도 부드러웠고, 마늘과 생강 향이 알싸하게 감도는 매콤한 겉절이 김치는 칼국수와 완벽한 조화를 이루었지요. 마늘이 듬뿍 들어간 양념장을 구수한 국물에 풀어 넣으면 얼큰한 풍미까지 즐길 수 있어 참 좋았습니다. 그날 이후로 저는 청량리 앞을 지날 때마다 자연스레 혜성칼국수가 떠오르곤 합니다. 반세기를 넘어 그 자리를 지켜온 이유가 분명했습니다.

#2.

우리 교회에는 아주 오래전부터 국수와 깊은 사랑에 빠진 분이 계십니다. 바로 박 집사님이십니다. 한 달에 한 번, 교회 식당에서 국수가 나오는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시는 분이지요. 국수가 나오는 날이면 주방 부장이신 이 권사님이 박 집사님만을 위해 커다란 특별 그릇에 국수를 따로 가득 담아 내어주십니다. 그 모습을 보는 청년들은 눈이 휘둥그레져 놀라곤 합니다. 이런 박 집사님에게 배 집사님은 시간만 나면 언제든 혜성칼국수를 대접하겠다고 여러 차례 따뜻한 제안을 건네셨습니다. 하지만 요즘 워낙 바쁘신 박 집사님이라 시간을 맞추기가 쉽지 않아 차일피일 미뤄지기만 했습니다. 안타까운 마음에 지난주, 제가 중간에서 다리 역할을 자처했습니다. 솔직히 저 역시 그 칼국수 맛이 내심 그리웠던 모양입니다. 그렇게 몇 번의 연락 끝에 드디어 어제, 반가운 만남이 성사되었습니다. 세 사람이 모였지만 우리는 네 그릇을 주문했습니다. 추가로 시킨 한 그릇은 제가 한 젓가락만 거들었을 뿐, 나머지는 박 집사님이 기분 좋게 전부 책임져 주셨습니다. 마침 창밖으로 비가 부슬부슬 내린 덕분에 칼국수 맛이 한층 더 좋았습니다.

#3.

든든하게 배를 채운 후, 우리는 근처의 빵 향기 가득한 카페로 자리를 옮겨 커피 타임을 가졌습니다. 그곳에서 청량리 토박이이신 배 집사님은 옛 친구들의 귀한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평소 기독교에 대해 무척이나 배타적이었던 한 친구분이 췌장암에 걸렸을 때, 집사님은 퇴근길마다 그가 입원해 있는 아산병원으로 매일 찾아가 복음을 전하셨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듣기 싫어하던 친구도 매일 곁을 지켜주는 신실한 사랑에 결국 마음을 열었고, 예수님을 영접한 후 평안히 소천했다는 이야기에 가슴이 뭉클해졌습니다. 배 집사님은 지금도 주일마다 연로하신 권사님들에게 친근하게 인사를 건네며 유쾌한 웃음을 선물하십니다. 최근에는 교우들을 대접하고 싶은 마음에 따로 약속을 잡고 따뜻한 식사를 나누고 계시지요. 여든을 바라보시는 우리 배 집사님은 참 멋진 어른이십니다. 어제 식사와 커피까지 기쁘게 계산하시면서도 한없이 행복해하시던 집사님을 보며 저희 또한 참 감사했습니다. 저 역시 나이가 들어갈수록 집사님처럼 주변을 따스하게 밝히며 멋있게 익어가고 싶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