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의 나라를 읽고
1. 가을이 깊어 갑니다. 높고 맑은 하늘 아래 조용히 책 한 권 펼쳐 들기 참 좋은 계절입니다.
최근 김진명 작가의 소설 『세종의 나라』 두 권을 읽었습니다. 책장을 덮은 뒤에도 가슴 한구석에 먹먹한 여운이 오랫동안 머물렀습니다.
책장을 넘기는 내내, 마치 조선 초기의 시공간 속으로 걸어 들어간 듯 생생했습니다.
소설 속 당시 조선의 사대부와 신하들의 시선은 오직 ‘대국(大國)’ 명나라만을 향해 있었습니다.
명나라에 결례가 되지 않는 것, 성리학적 예법과 명분을 지키는 게 그들에게는 백성의 삶보다 우선시하는 절대적 가치였습니다.
태조 이성계가 명나라 황제로부터 ‘조선’이라는 국호를 받아왔듯, 그들은 스스로 소국의 틀 안에 갇혀 황제의 눈치만 살폈습니다.
특히 한자는 하늘이 내린 신성한 글자라 여겨 사대부 양반들만의 독점적 권력으로 삼는 도구였습니다.
그에 비해 글을 모르는 백성들은 억울한 누명을 쓰고 옥살이를 해도, 법을 몰라 죄인이 되어도 하소연할 길조차도 당시에는 없었습니다. 권력을 쥔 이들이 명분의 성벽 뒤에서 사리사욕을 챙기는 동안, 힘없는 백성들은 하루하루 고단한 신음과 눈물만 더해 갈 뿐이었습니다.
2. 그러나 단 한 사람, 임금이었던 세종은 달랐습니다. 그의 눈길은 화려한 명나라 궁궐이 아니라, 하루하루 땀 흘리며 살아가다 글자를 몰라 눈물짓는 백성들의 거친 손끝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백성 누구나 쉽게 제 뜻을 펴고 읽을 수 있는 우리만의 글자가 있어야 한다.”
세종의 결단에 신하들은 벌떼처럼 들고일어나 그건 명나라 황제에 대한 모독이며 유교적 명분을 저버리는 일이라며 반대했습니다. 심지어 폐위 운운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세종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눈이 짓무르고 시력을 잃어가는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입 모양을 그리고 다양한 소리를 내는 실험을 하면서 초성, 중성, 종성을 엮은 글자들을 한 자 한 자 빚어내었습니다.
그 눈물겨운 여정에 신숙주, 성삼문, 정인지, 박팽년 같은 집현전 학자들의 헌신이 더해져 마침내 28자의 ‘훈민정음’이 탄생했습니다.
나랏말이 중국과 달라 한자와 서로 통하지 않니하므로...
세종의 고독한 결단을 추적하며 감동을 더 해준 금부도사 ‘한석리’와 ‘권숙현’은 작가가 빚어낸 가상 인물이었지만, 그 시대를 온몸으로 살아낸 사람들의 아픔을 실감 나게 전해주었습니다.
3. 요즘 전 세계에 한국어 열풍이 뜨겁습니다. 외국인들이 K-팝을 우리말로 따라 부르고, 자막 없이 한국 드라마를 보는 것을 자랑으로 여깁니다.
지난 9일(수) 서울공예박물관에서 행사가 있어서 갔습니다. 행사를 마치고 인사동 길을 걸었습니다. 눈에 띄게 외국인들이 많았습니다. 카페에서 커피를 주문하고 기다리는 동안 몇 명의 외국인들도 들렸습니다. 그들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한국어로 주인장에게 뭔가를 물으며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세계 유수의 언어학자들이 입을 모아 한글은 세상에서 가장 과학적이고 아름다운 문자라고 극찬합니다.
이 놀라운 문자를 날마다 숨 쉬듯 사용하는 우리는 참으로 축복받은 사람들입니다.
한글은 백성을 불쌍히 여긴 한 왕의 ‘지극한 사랑과 눈물’에서 피어난 생명의 언어입니다.
오늘 우리가 주고받는 말과 글도 세종의 마음처럼 따뜻했으면 좋겠습니다. 서로를 찌르고 상처 주는 차가운 말 대신, 지친 이웃의 손을 잡아주고 아픈 마음을 감싸주는 다정한 언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나아가 우리에게 주신 이 귀한 말과 글로 날마다 하나님을 찬양하고, 주의 거룩한 생명의 말씀을 읽고 나누는 데 더욱 힘을 쓰는 가을이면 좋겠습니다.
